2017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다시보다>전
2017.09.26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아래로 내려가다보면, 고가도로가 시작되는 곳 다시 밑에 조그마한 작은 틈이 보인다. 도로와 고가 사이 그 작은 공간에 자리잡은 미인도 라는 전시관에서는 <다시보다>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의 주제가 되는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은 우리에게 '미아리'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곳이다. 몇 해 전에 이름을 하월곡동으로 변경해서 더이상 미아리라 불리지는 않지만 한때 400여개의 성매매 업소가 밀집되었던 곳으로 수천 명의 여성들과 성매매 남성들이 이 곳을 스쳐 지나갔다. 전시를 주관한 여성인권센터 [보다]의 정미례 대표는 성매매 없는 세상을 꿈꾸며 본 전시를 통해 여성인권문제를 돌아보고 여성들이 성매매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전시장 풍경은 이렇다. 나무 콘크리트 공간을 나무합판으로 틀을 짜서 실내 공간을 만들었는데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부는 꽤 아늑한 느낌을 전달한다. 목재가 주는 따뜻함과 콘크리트가 주는 날 것의 느낌이 묘하게 대비를 이루면서 재밌는 공간이 형성된다.
내부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이다. 마치 한옥의 대청 마루같은 느낌이다. 앉아 쉴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거 같은 느낌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의 글로 모아놓았다. 담담한 이야기를 써내려가지만 글 속에는 성매매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과 지옥보다 못한 고통이 절실히 드러나있다.
"저희가 자유롭게 쉬고 싶어도 일수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쉴 수가 없어요."
"당장 급하고 집안 식구들 죽게 생겼으니까 싸인을 하고 차용증을 쓰고 돈을 받는 거거든요."
그동안은 막연하게 성매매 여성들을 바라보며
'편하게 돈벌려고 몸파는거 아닌가'
'어자피 돈 벌어서 본인 위해 쓰는거 아닌가, 왜 피해자인척 하는걸까?'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들도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며, 꼭 원해서 성매매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인은 차라리 네덜란드처럼 성매매를 양성화시키고 합법화하여 세금도 걷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미아리의 성매매 관련 자료들을 역사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마송은
벽과 기둥 사이 좁은 공간을 이용하여 검은 콘크리트 벽에 작은 빔을 쏘아 영상을 상영한다.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그 곳에서 작가는 영상을 통해 성매매가 당연시되지 않는 세상, 그들에게도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미아리 텍사스> 이수남
작가는 미아리 텍사스의 민낯을 카메라로 담아낸다. 작가의 말마따라 차마 밤에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가끔 낮에 카메라를 들고 미아리 대낮을 촬영했다. 반대편 고층 아파트와 대비를 이루며 더욱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미아리의 모습은 단순한 빈부격차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진속 어르신들은 일명 '마담'들로 미아리에서 성매매를 하다 나이를 먹고 마담으로 일하며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한다. 실제로 보면 얼굴과 눈빛에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살기와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하니 그간의 인생이 얼마나 다사다난했을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160×200cm> 정원연
2015년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였던 곳의 내부 공간 바닥에 설치했던 작품이다. 실제로 성매매가 이루어지던 방의 넓이가 160×200cm 정도였다고 한다. 성인 둘이 누우면 꽉 차는 공간에서 수많은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반복되었을 것이다. 살과 살을 맞대는 어찌보면 그 무엇보다도 친밀한 행위의 끝이 돈 몇푼이라니, 작가는 이런 관계가 성매매 뿐이겠냐면서 인간관계도 결국에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네 면에 레이스를 두른 이유는 당시 70~80년대 성매매 여성들이 가장 입고 싶던 옷이 하얀 카라가 달린 교복과 레이스 달린 옷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레이스 천으로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떨어진 태극기 Fallen flag> 김도희
불타버린 성매매 업소에서 떼어낸 문과 그곳에 걸려있던 태극기의 모습이다. 작가는 10여 년 전 화재 이후 출입금지 지역으로 방치되어 온 성매매건물을 오고가며 쓰레기를 치우고 재를 닦아냈다. 처음 문을 열기 전에 안쪽에서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는데, 문을 열고 나니 그 안에 죽어간 고양이들의 시체가 거대한 산을 이루며 말로 표현 못할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고 한다. 내부 공간은 서 있는것 조차 힘들만큼 음산한 기운이 공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작가는 벽지를 벗기고 재를 닦아냈다. 결국 하얀 콘크리트 벽을 드러낸 공간에서는 더이상 음산한 기운이 돌지 않았다고 한다.
<뿌리 Root> 김도희
성매매업소 2층에서는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었으며 바닥에는 쓸지 않은 낙옆 부스러기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작가는 낙옆을 치우고 뿌리를 드러낸 오동나무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월곡88> 김도희
프로젝트 당시에 쓴 글과 스냅사진을 정리하여 200권 한정으로 책을 엮어냈다. 현장에서 채취한 오동나무의 작은 뿌리 조각도 옆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로의 말들> 허나영
현관 앞에 두꺼운 암막 커튼이 드리워져 어둠이 더욱 짙게 다가오는 그곳의 여성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입밖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커튼에 기록했다. 어두운 몸 안에 갇혀있던 말들, 그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못하던 말이 밖으로 나와 몸이 되어 발걸음을 내딛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온 작은 목소리가 이정표가 되어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주기를 작가는 희망한다.
전시장 초입의 방명록 옆에는 사람들의 응원 문구가 적혀있다.
전시를 나오며 두 가지 기념품을 얻어왔다.
하나는 물티슈, 또 하나는 스티커메모
"내 술은 내가"
"니 흥은 니가"
"내 흥은 내가"
너무나 상식적인 말들이지만 이거조차 지키기가 어려워 그렇게 수많은 피해자들이 양성되었나 보다. 따로 받은 리플렛 안에는 여성인권센터[보다[의 후원회원 신청서가 들어있었다. 후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운영이 어려운 비영리 단체이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다. 본인은 성매매의 금지가 정답인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아 후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단체의 뜻에 공감하고 그들의 활동을 응원할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결과야 어떻든간에 여성들이 더이상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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