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이해서 써 보면 내가 살던 고양시의 장소들을 선택하고 그곳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억이나 감정을 가지고 공간의 성격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원흥마을 12단지 아파트 복도를 재구성한 작업이다.
LH 임대아파트는 대개 복도식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한 층에 14세대가 살고 있는데, 긴 복도를 따라 여러 집이 하나의 복도를 공유하고 있다. 내 집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집 현관을 지나쳐야 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아파트에서는 이웃 간의 교류가 거의 없다.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저 복도창 너머로 이웃이 실존함을 알 수 있는 검은 실루엣만이 스쳐갈 뿐이다.
익명의 누군가는 흰 석고상으로 대체되었으며, 고독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오늘날 복도식 아파트의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올해는 특정한 장소를 구현하기 보다는 장소가 가진 성격과 이야기를 새로운 맥락으로 재구축하는데 목표를 뒀다.
<꿈의 흔적> 이라는 제목은 이번 작업이 꿈속 이야기에 집중할 것이라는 뜻으로, 내가 꾸는 꿈의 내용과 이야기에서 의미있는 흔적을 발굴하고 이야기로 표현하고자 한다.
꿈속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과 이야기는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자 또 다른 현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잠에서 깨고 나며 그 경험은 모래알처럼 금방 흩어져 버린다. 꿈속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려면 우리의 뇌가 꿈을 만들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기록하고 번역해서 우리가 인식 가능한 이미지의 형태로 재구성해야 한다.
(위쪽 이미지) 인간의 꿈을 3D 데이터로 번역하기 위한 장치를 상상하고 오브제로 만들었다.
작업은 그러한 꿈의 해석과 번역이 가능한 또 다른 시공간을 상상하며 시작된다.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꿈의 이야기는 3D 데이터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일부는 삭제되고 변형되며 3D 그래픽의 제반 조건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형태를 갖춰나간다. 우리의 뇌를 스캔하는 과정에서 꿈속 이야기는 Voxel 데이터로 재구성되고, 번역된 꿈의 이야기는 최종적으로 픽셀 기반의 스크린을 통해 재생된다.
꿈속 도시의 장소는 분명 현실과 닮아 있지만 이성보다 감각이, 배려보다는 욕망이 대놓고 꿈의 공간을 지배한다. 때론 초현실적으로 어떨 때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꿈의 도시는 그럼에도 현실과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다음부터는 구체적인 작업 과정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계속 쓰고 고민하다 보면 좋은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