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랑 일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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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모사업 하나가 또 발표됐다.

떨어지는 일이야 익숙하니 크게 타격은 없지만,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과연 이렇게 작업을 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작업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나.

작업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좋든 싫든 생계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이 내 생계에 도움을 주는가 생각하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분명 아티스트피라는 명목으로 들어오는 돈은 조금이나마 생계에 보탬이 되고 있다. 문제는 뭔가 공모를 써서 전시를 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정리하고, 물론 회사에 가서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일이 전혀 즐겁지가 않다. 될만한 사업을 구상하고 그 카테고리 안에 짜 맞추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결과물을 위해 시간을 바친다. 왜 평론가들이 그런 작업을 원하니까. 그렇다고 당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작가로 활동시작하면서 고양시나 정말 신진작가지원사업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사업에서 당선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나마 한건이 잘돼서 최종까지 면접을 봤다가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며 의욕도 사라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미치겠다. 

 

2. 작업 결과의 불만족

기술을 이용해서 작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기술융합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작업을 잘 표현하기 위해 기술의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업에 참여하면 할수록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미 나이도 차고 이제 이런 지원사업을 받을 수 있는 나이도 얼마 남지 않았고, 어린 친구들의 기술은 훨씬 뛰어나고 나는 계속 제자리걸음이고. 작업의 결과물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공부를 해서 작업의 퀄리티를 올려야지 하는데. 공부는 잘 안되고. 배는 아프고.

 

3.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

이런 생각을 처음 한 게 2013년도 말이었다. 복수전공을 하느라고 졸업전시와 논문제출을 같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둘 다 해낼 자신이 없어서 졸업전시만 먼저 끝내고 2014년 1학기에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그때 진로방향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학비 걱정도 있었고, 작업을 평생 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면접에서 다 떨어졌다. 그것도 학교 선배를 통해 소개받은 자리, 별 실수가 없었다면 당연히 됐을 자리를 떨어지고 나니 당시 충격이 컸다. 그래서 취업보다는 공무원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노량진 학원을 등록하고 1년을 다녔다. 지금생각하면 그렇게 공부를 또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던 거 같다. 모든 시험을 다 떨어지고 1년을 더 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무조건 20대에 취업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고, 공무원 준비는 깔끔히 포기하고 국비취업교육학원을 알아봤다. 구로에 있는 컴퓨터학원이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3ds max와 cad를 배웠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6개월 넘게 교육이 진행됐다. 여기서 취업도 했다. 참고로 수료하면서 등수를 매겼는데 1등을 했다.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그렇게 절실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처음 취업한 회사는 건축 CG 회사였는데, 워라밸이 정말 경악할 수준이었다. 유연근무도 있고, 대체휴무도 있고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었는데, 바쁜 시즌이 야근이 상상을 초월했다. 마감이 있는 회사가 대개 그렇다. 집에서 회사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는데, 그런 야근까지 버텨야 한다니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서 한 달 만에 나왔다. 그렇게 20대의 마지막이 몇 달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집 근처 회사를 알아봤다. 무조건 가까운 회사에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인데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에 지원해서 면접을 봤다. 작가 사무실이었다. 직원 수도 얼마 없고 분위기도 가족 같았다. 대표도 학교 선배였다. 면접을 봤고 합격을 해서 20대의 마지막 날을 회사로 출근했다. 그렇게 1년 반을 채우고 대학원에 갔는데 문제가 생겼다. 특수대학원이라서 수업이 야간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낮에 열린 것이다. 학교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원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회사와 문제가 생겼다. 회사랑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니 실수도 잦았다. 큰일이 터졌다. 도저히 회사를 못 다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년만 채우고 회사를 나왔다. 대학원 생활을 어떻게 그럭저럭 보내고 2021년에 졸업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돈도 생각보다는 많이 벌었고 작업도 많이 했다. 매번 좌절하고 또 가끔 기뻐하고 보람을 느끼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만큼 마음이 답답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답을 못 찾겠다. 그렇다고 지금 그만두면 또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다. 그럼 언제까지 버터야 할까. 40살, 50살. 혼자 방구석에서 컴퓨터를 붙잡고 혼자 작업이나 평생 하는 걸까. 작업을 하면 할수록 불안하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인정받지 못함에 슬프고 짜증 나고 답답하고, 버는 돈 없이 새는 돈은 줄줄줄, 몸은 안 좋아지고 부모님은 늙어가고, 친구도 사라지고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나고 이렇게라도 글을 써야 답답함이 조금 해소될까 싶지만 그렇지도 않고. 

 

2월 박사 입학은 아마 포기할 거 같다. 반액 장학금을 줄 리도 없고 준다해도 그 돈을 내면서 다닐 자신도 없고. 모르겠다. 가끔은 신적 존재가 내려와서 내 귓가에 대고 삶의 방향을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말은 잘 듣는데 좀 누가 좀 정답이라도 알려주면 좋겠다. 아 머리 아프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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